시진핑은 누구?
작성자: 중국사랑   등록일: 2013-11-02 15:04:10   조회: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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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중국 대륙을 이끌어갈 시진핑 국가 부주석 겸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서방 언론에서는 그에 대해 "워낙 말이 없어 속을 알 수 없는 지도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집권 전 중국 최고지도자 후보들에게 공통된 '몸 낮추기'일지도 모른다. 작년 2월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서방 언론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비판하자 그는 일갈했다. "우리는 혁명도, 기아도 수출한 적이 없다. 밥 먹고 할 일이 없는 외국인들이 이러쿵저러쿵한다."

중앙당교 교장으로서 올해 들어 "권력은 민이 준 것이며, 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權爲民所賦 權爲民所用)"는 말도 자주 쓰고 있다. 과거처럼 혁명의 권위에 기댈 수 없는 현재의 공산당이 집권당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더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소신에서 나온 말이다.


시 부주석은 1953년 산시성 푸핑에서 태어났다. 혁명원로인 시중쉰(習仲勛·1913~2002) 전 부총리의 차남이다. 그래서 '태자당'으로 분류된다.

혁명 원로의 아들이었지만 청소년 시절은 불우했다. 부친인 시 전 부총리가 문화대혁명으로 숙청된 상황에서 그는 산시성 지방으로 쫓겨가 고된 노동을 하며 보내야 했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부친이 복권된 뒤에야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1975년 22세의 나이에 칭화대에 입학해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첫 공직은 중앙군사위 판공실 비서였다. 중앙보다는 지방 근무가 많았다. 산업화가 앞선 동부 연안지역 근무는 경제분야의 경험을 쌓게 했다.

그가 정치적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이른바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파의 리더인 후진타오 주석이 상하이방(상하이를 기반으로 입신한 정치인)의 대부(代父)로 통하는 장쩌민 전 주석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시기인 지난 2006년. 당시 상하이방의 일원인 천량위(陳良宇) 상하이시 당서기의 비리사건이 계기가 됐다.

태자당 소속인 그는 상하이 당서기에 취임한 뒤 이 사건을 무난히 수습했다. 이때 공청단파와 상하이방 양쪽에서 "정치력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가 나왔다고 한다. 시 부주석은 그 직후 열린 2007년 10월 당 17차 전국대표자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차기 지도부로 급부상했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그가 고위 당원들의 투표를 통해 최고지도자로 부상한 첫번째 케이스라는 말도 나온다. 후 주석이 그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 아니라 당내 민주화 방침에 따라 부부장(차관)급 이상 고위 공산당원들의 투표를 통해 차기지도자 1순위에 뽑혔다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비팀장, 2009년 톈안먼 사태 20주년 대비팀장 등을 맡았고, 올 5월 김정일 방중 당시에는 후 주석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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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화려한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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