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방법(Camel method)을 통한 중국 무슬림 전도
작성자: 중국사랑   등록일: 2013-11-02 13:26:05   조회: 691  


낙타방법(Camel method)을 통한 중국 무슬림 전도

일상의 분주함 가운데 벗어나, 잠시 의자에 앉아서 그 곳의 일들을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이슬람을 믿는 그 민족을 생각할 때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사막에서 낙타를 탔던 기억이 새롭다. 낙타는 생각보다 큰 동물로, 일어날 때와 앉을 때 무릎을 펴고 일어나기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중심을 잃고 떨어질 수도 있다.
  이 낙타와 관련된 것이 오늘 이야기의 주제인 소위 ‘낙타방법(Camel method)’이다. 어떤 독자들은 이 제목을 들을 때, 낙타를 타고 사막을 지나면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연상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기도를 많이 해서 무릎이 낙타무릎처럼 되라고 하는 내용은 아닐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게 다 필요한 것이지만 오늘 이야기하려는 주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필자는 3년 전, 서구 사역자에 의해 쓰여 진 <<Camel Method>>라는 소책자를 한국어로 번역, 정리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국인 사역자들과 공유한 적이 있다. 이 내용에 따르면, 무슬림들이 믿는 ‘알라’의 이름이 100개가 있는 데, 그 중 인간에게 알려진 이름은 99개이다.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나머지 한 이름을 알고 있는 동물이 바로 낙타라고 한다. 낙타만이 알고 있다는 ‘그 이름’, 그 하나의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낙타’를 타고 무슬림들에게 접근하고자 한다.

평화의 사람을 찾아라
무슬림들에게 접근할 때 우선 성경적인 원리를 갖고 나아가야 한다. 먼저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살펴보자.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이 70인을 보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원칙으로는“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평안을 받을 사람(평화의 사람)’이란 단어에 주목한다. 이 평화의 사람은 1) 예수님에 대해 더 듣고 싶어하며 2) 영적인 갈급함을 드러낼 것이고 3)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것이며 4)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것이다. 일단 ‘평화의 사람’의 집에 방문하게 되면, 그와 그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병을 고치며 그 집에 계속 머무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럼 수많은 무슬림들 가운데 평화의 사람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직접적으로 복음을 전해보는 것이다. 물론 전도의 방법은 무척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낙타방법’은 무슬림들의 최대 경전인 꾸란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꾸란의 수라 3:42-52에는 천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마리아가 동정녀로 아기를 잉태할 것과, 예수가 메시야(구세주)이며 의로우시며, 장님을 눈 뜨게 하고, 문둥병을 낫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지금은 하늘에 계신데 또 우리가 하늘로 가는 그 길을 알고 있다는 내용 등이 실려 있다.
  이렇듯 낙타방법은 무슬림들이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는 꾸란을 통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기본 진리를 설명하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할 디딤돌을 놓아준다. 그러나 이 디딤돌은 상대방이 평화의 사람인지를 분별하는 수단일 뿐,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으로 이끄는 것까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널 수는 있지만 건너편에 도착한 다음에는 배에서 내려야 하듯, 계속 꾸란만을 붙잡고 있다가는 복음의 진리의 빛이 무슬림들에게 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낙타방법으로 다가가기
필자 역시 낙타방법을 실제로 사용해보고자 몇 차례 시골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먼저 마을을 걸어 다니며 축복하고 기도한다. 이곳에서 평화의 사람을 만나 그가 예수님을 믿고 그를 통해 이 마을이 복음화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말을 걸다 보면 나에게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친절하게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차와 음식을 대접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연결된 가정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다음번에 다시 방문할 때는 낙타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꾸란을 준비해 갔다. 먼저 내가 예수님 믿는 사람임을 이야기하고, 꾸란의 구절들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내 설명을 듣기 보다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끼리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는 바람에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긴 경험도 있다. 내 언어의 한계 때문에 꾸란의 내용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평가해 볼 때, 필자가 낙타방법에서 제시하고 있는 원리들을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외국인에 대한 감시가 심한 이 지역에서, 내가 복음 전하는 사람인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늘 조심조심했던 것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복음 전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게 된 핑계거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낙타방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본다. 왜냐하면 실제로 낙타방법을 잘 사용해서 무슬림 결신자를 얻은 사역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낙타방법의 성공여부는 그 방법을 자신의 현실에 잘 적응했느냐의 여부와도 관련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와 더불어 필자의 사역을 돌이켜보면서 반성하는 것은, 그 동안 이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우선 친구로 사귀고, 좀 더 친해져서 마음이 열리면 그 때 복음을 전하자”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방식도 여전히 유용하지만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3-4년 넘게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해온 친구가, 내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자신을 위한 나의 기도는 감사하게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슬림으로 남기를 고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알고 지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복음을 전하기가 더욱 어렵고, 그도 이미 틀에 박힌 자신의 사고와 세계관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한다.
  이제는 새로운 방식을 병행하면서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새로운 방식이란 즉, 만나자마자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알리고 복음을 전하여서 그가 평화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내 생활의 반경 안에서 만남이 이루어진 ‘그’에게 처음부터 당당히 내가 소유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빵을 구워 파는 시골 출신의 가장일 수도 있고, 미용실에서 머리를 매만져주는 미용사일 수도 있다. 학교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학생일 수 있고, 단골식당 종업원이거나 구두 수리공일 수도 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복음을 전해봤을 때 바로 주님이 예비하신 ‘평화의 사람’인 것이 확인되면 집중적으로 교제하며 계속해서 성경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낙타방법을 활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시골 마을을 헤매 다닐 필요는 없다. 그들이 우리가정을 방문했을 때도 가능하며, 꾸란을 인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바로 참된 하나님을 알고 있는 ‘낙타 (그리스도인)’임을 말하고, 하나님의 그 진정한 이름이 ‘예수’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기대한다. 나 자신 스스로 낙타가 되어 그 사막을 넘어가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한 빛/중국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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